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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현의 별세 및 논란 신상사파: 명동을 지배한 주먹들의 전설 계보

티스토리관리자 2024.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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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현의 별세와 함께 조명된 신상사파는 1950년대부터 명동을 지배하며 한국 주먹계의 전설로 남아 있습니다. 신상현의 영향력과 신상사파의 계보, 그리고 그의 죽음이 불러온 논란을 통해 한국 조직폭력배의 역사를 탐구합니다.

신상현-신상사파-신상사-별세
신상현의 '신상사파' 인 명동황제 신상사의 별세

신상현 그는 누구?

신상사-젊은시절-모습
신상현(신상사) 젊은시절 모습

신상현의 본명은 신상사이며, 195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서울 명동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한국 조직폭력배 '신상사파'의 두목으로, 대한민국 주먹계에서 전설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신상사파'는 신상현이 이끄는 조직으로, 그가 명동을 장악하며 40년 동안 폭넓은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신상현의 출생 및 생애

  • 본명: 신상현(申常鉉)
  • 출생: 1932년 3월 20일
  • 출생지: 경기도 경성부 관수동 (현재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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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망: 2024년 8월 10일 (향년 92세)
  • 병역: 육군 특무부대 1등상사 전역 (1949년 ~ 1953년)
  • 신체: 178cm, 80kg
  • 직업: 조직폭력배
  • 별명: 명동의 황제

신상현은 서울 명동에서 활동하며 '명동의 황제'라는 별명을 얻은 조직폭력배로, 한국 주먹계에서 전설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야인시대 김두한과 신상현의 관계

야인시대-오상사-신상현
야인시대 에서 명동의 자존심인 명동파 '오상사'(신상현)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김두한은 명동파의 수장이자 대한민국의 주먹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신상현은 명동을 중심으로 신상사파를 이끌며 세력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드라마에서 김두한과 신상현은 당시 서울 주먹계를 장악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관계를 형성하며, 서로의 세력을 공고히 하는 데 협력하기도 했습니다.

드라마-야인시대-김두한
드라마 '야인시대'의 김두한

1950년대 서울 주먹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김두한과 신상현이 있습니다. 김두한은 명동파의 수장이자 정치인으로서 유명세를 떨쳤고, 신상현은 명동을 중심으로 신상사파를 이끌며 영향력을 확대했습니다. 두 인물은 서울의 주먹계를 장악하는 과정에서 서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정치권과의 유착 관계를 통해 세력을 더욱 공고히 했습니다.

신상사파와 명동파

SBS-대하드라마
SBS 대하드라마'야인시대'

신상사파와 김두한이 이끌었던 명동파는 당시 서울 주먹계의 양대 세력으로, 정치적 후원과 경제적 이익을 기반으로 세력을 확장했습니다. 김두한은 명동파의 수장으로서 신상사파와 협력하거나 대립하며, 한국 주먹계의 역사를 함께 써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함께 조직폭력배들의 영향력은 약화되었고, 이로 인해 신상사파와 명동파의 세력도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이들의 몰락은 한국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며, 조직폭력배들이 더 이상 설 자리를 잃어가는 과정을 잘 보여줍니다.

1. 신상사파의 형성과 주요 인물들

신상사파는 서울 명동을 기반으로 하여 활동했으며, 명동 일대의 상권을 장악하고 다양한 사업에 관여하면서 부를 축적했습니다. 신상현은 육군 상사 출신으로, 군사훈련에서 익힌 경험을 바탕으로 조직을 체계적으로 운영했습니다. 신상사파의 주요 인물로는 신상현 외에도 그의 오른팔로 알려진 구달웅과 후계자 홍인수 등이 있습니다. 특히, 홍인수는 이후 한화그룹 회장 김승연 보복폭행 사건에 연루되며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2. 신상사파와 한국 주먹계의 변화

1950년대 당시 서울 주먹계는 명동파, 동대문파, 김두한파 등으로 나뉘어 있었으며, 신상현은 명동파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신상사파는 정치권과도 밀접한 유착 관계를 유지하며 세력을 확장했으며, 특히 경제가 발전하면서 사채시장과 마약 유통 등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러나 신상현은 마약과 사채 등 불법 행위와는 거리를 두며 비교적 깨끗한 이미지를 유지하려 했습니다.

3. 신상사파의 전성기와 몰락

신상사파의 전성기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이어졌습니다. 신상현은 '7 공자'로 불리는 재벌 2세들과의 유대 관계를 통해 권력과 부를 축적했고, 이들은 명동에서 술과 카지노를 즐겼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부터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함께 신상사파의 세력은 점차 약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한국 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

신상사파 두목 신상현의 별세와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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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서울시장 명의의 조기. 오 시장 명의의 조기는 이날 오전 빈소에 도착했다가 논란이 불거지자 이날 오후 5시 20분쯤 철거되는모습

1970년대 명동을 장악했던 신상사파 두목 신상현이 2024년 8월 10일 별세하면서 그의 빈소에 서울시장 오세훈의 조기가 놓였다가 철거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서울시는 오 시장과 신 씨가 직접적인 인연이 없음을 밝히며, 지인의 요청으로 조기를 보냈다고 해명했지만, 부적절한 조치라는 비판이 일자 조기를 회수했습니다. 경찰은 장례식장에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경계를 강화했습니다.

명동-황제-신상사-빈소
명동 황제 제1대 조폭 '신상사(신상현)의 빈소인 서울아산병원.

오세훈 시장의 조기 논란

서울시장-조폭-빈소-조기-논란
서울아산병원 신상현씨 빈소에 오세훈 서울시장이 조기를 보낸 모습

서울시장 오세훈이 1970년대 명동을 장악했던 '신상사파' 두목 신상현의 빈소에 조기를 보낸 후 철거한 사건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오 시장과 신 씨의 직접적 인연이 없으며, 지인의 요청으로 조기를 보냈으나,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있어 회수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번 사건은 공직자의 조기 조치와 관련한 규정 관리의 필요성을 재차 확인시켰습니다.

결론

신상사파와 신상현의 이야기는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측면을 조명하며, 조직폭력배가 사회에 미친 영향을 보여줍니다. 신상사파의 몰락은 한국 사회가 민주화와 투명성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반영하며, 그들의 역사는 오늘날까지도 논란과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오세훈 시장의 조기 논란은 이러한 과거가 여전히 현재와 연결되어 있음을 상기시키며, 공직자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논의를 촉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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